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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잡지_ 2016 2월호

2017.08.14 조회수 : 123

에세이표지.jpg


<007 작전>


“엄마...아침에 분홍색 이슬이 비쳤어” 딸아이의 문자메시지가 날라 왔다.
지난 12월 15일 아침 그러니까 딸아이가 출산예정일을 2주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새 조리원으로 이사를 하고
정리하느라 힘들었나보다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혼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어쩐 일인지 아기소식이 없어
서 두 사람 같이 병원가서 한번 체크 해보라고 딸에게 권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기일이
라 엄마 아빠 두 분이 나란히 누워 계시는 전라도 임실 현충원에 친정식구들과 가는 중이었다. 차 안에서 딸의 전
화를 받았는데 세상이 무너진 듯 큰소리로 엉엉 울며 검사결과를 설명하고 있었다. 생리통으로 오랫동안 고생하
던 딸은 자궁내막증으로 나팔관이 반 너머 막혀있고 딸 아이와 남편 둘 다 에게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차
라리 빨리 결론을 내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시험관아기 시술을 결정하게 되었다. 배란을 유도하는 호르몬요법과
일련의 과정을 몹시 힘들어하며 감내하던 딸아이는 드디어 예쁘게 자란 배아를 자궁 내 이식하게 되었는데 회복
실에 누워서 비몽사몽간에 천사의 방문을 맞이했다고 한다. 밝은 빛에 둘러싸여 천사의 방문을 맞이 했다는 기
쁜 소식을 예감하며 “감사합니다” 가 마음 속으로 절로 터져 나오는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시험관 시술을 한번
에 성공한 것이다. 수태고지를 위해 방문한 천사를 보고 감동받아 아기의 태명을 천사로 정하였다. 일주일 후 착
상여부 확인을 위해 다시 본 초음파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 모양이 하트모양이
어서 두 번째 아기의 태명은 하트라고 지었다. 천사와 하트, 조금은 특이한 태명을 가진 쌍둥이와 기쁨 두배 축복
두배의 축하 인사를 받았으나 40주간 힘든 시간을 보내야하는 딸 생각에 내 마음은 기쁘면서도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배가 불러오면서 누워 자기도 힘들고 숨이 차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을 알기에 눈에 안 보이는 내
딸의 자식보다는 눈 앞에 내 딸의 안위가 더 중요한 것이 모든 친정엄마들의 마음일 것이다.


열 달 동안의 우여곡절을 다 기록할 수는 없으나 24주쯤 쌍둥이 중 한명이 심장이 뛰지 않고 멈춘 것을 알았다.
하트가 왜 거기까지만 살고 하늘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비통에 잠긴 딸의 슬픔에
나의 마음은 에어지는 듯 하였다. 고통은 영적인 성장을 가져오고 인간의 내면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인
가? 나는 딸을 위로 하고 태중의 생명을 보호해주시기를 하나님께 청하는 기도문을 매일 아침 딸에게 써서 보냈
다.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고 함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기도하자는 마음이었다.
나 어릴적 살던 우리집 마당 한가운데는 깊은 두레박 우물이 있었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어 올리셨다.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엄마보다 먼저 우물을 길어 올리는 것을 싫어하셨다. 어느
날 새벽 우연히 장독대에 서서 물 한그릇 떠놓고 두 손 모아 비는 엄마모습을 보았다.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자신
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에 천지신명께 간구하는 모습이 나의 뇌리에 박혔다. 어머니가 내 집 첫 우물을 길어 올리
듯 나도 내영혼의 정한수를 길어올려 하나님께 새 생명을 지켜달라고 기도하였다. 하트가 떠난 뒤에 생긴 자궁수
축이 조산으로 이어질까봐 딸은 서울대병원으로 전원을 하였다.

주치의 이신 전종관 교수님은 오랜 기간 조산사협회에서 강의도 해주시고 조산사에 대한 이해가 깊으신

훌륭하신 산부인과 의사이신데 이렇게 또 딸과 인연이되어 깊은 감사의 고리로 연결되었다.

이슬이 비치고 불과 얼마 뒤 “양수가 터졌나봐 뜨거운 것이 줄줄 흘러 나와...”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오랜시간 출산을 직접 담당하던 나는 평이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안심시키고 아기머리가 내려가서 입구를 막아

더 이상의 양수가 새지 않도록 서서 걸으라고 하였다. 오늘 중에 천사가
태어날거야 너무 걱정 하지 말고 자궁수축이 몇분 간격으로 오는지 체크하라고 하였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자연
분만과 모유수유를 하겠다며 야심차게 준비해온 딸이기에 오늘이 이제 디데이가 되나 보다 하고 여겼다. 엄마는
은행 볼일보고 갈테니 가방 싸고 준비하고 있으라 했는데 “오빠 오라고해서 둘이 병원가고 있으니 엄마는 천천
히 병원으로 오면 돼”하고 전화가 왔다. 신의 도우심은 거기서 끝이 아니고 그날 따라 딸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
텅빈 위장으로 전신마취를 해야하는 응급수술을 마쳤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얼마 후 나는 아직 은행에 있는데 사위가 전화로 응급수술로 아기가 나와서 신생아 중환자실로 가고 딸은 아직
수술 중이라고 한다. “왜?” 라는 질문에 사위는 “아기 앞에 뭐가 있어서 위험하다는데요?”라고만 말한다. ‘전치
태반?’ ‘그건 이미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내가 금방갈게’ 라고 대답하면서도 천사의 생명이 백척간두에
서있었던 사실을 몰랐었다. 쌍둥이가 살던 넓은 집에 혼자 살게 된 천사는 머리를 옆으로 혹은 위로 마음대로 위
치 바꾸며 돌아다니다가 아직 출산 2주가 남은 시점에 골반에 진입준비가 안된 채 양수가 터진 것 같았다. 수축
이 오면서 머리가 밀려 내려오고 머리 앞에 위치해 있던 탯줄이 머리보다 먼저 밖으로 빠져나가 머리로 탯줄을
눌렀던 것이다. 제대탈출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고 교과서에서 배우는 응급케이스인 것이다. 마침 그날 전종관
교수님이 외래 진료 보시는날인 것도 새벽이나 한밤중이 아닌 대낮인 것도 첫 내진시 제대탈출을 알아채신 것도
007 작전처럼 응급으로 25분 만에 아기가 나온 것도 심지어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 모두 내리라고하며 산모
머리를 낮춘 자세로 손으로 아기머리를 밀어 올리며 탯줄로 전달되는 산소가 막히지 않도록 손을 못 빼고 수술
실로 옮기고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이 사람은 산모 옷 벗기고 저사람은 혈관 찾아서 주사놓고 각종모니터 주렁
주렁 달고 인큐베이터 준비를 지시할 때 바로 준비된 것까지도 천운이었다고 말한다. 출산시 아프가 점수가 1분
에 2점 이었다고 한다. 시커멓게 숨도 안 쉬고 축 늘어져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힘없는 천사가 눈앞에 그려졌다.
대기하던 의사들에게 집중 케어 받으며 5분에 아프가 8점 그리고 무엇보다 뇌초음파에서 이상소견 없다고 설명
들었을 때 온 우주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부터
는 우리의 몫이다. 건강하게 잘 키워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녀로 키우는 것과 나를 통해서 세상에 왔으나
나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달아 최선을 다해 키우는 지혜가 있기를 바라며 천사를 지키시기 위하여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부모로 내 딸이 살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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