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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잡지_ 2015 11월호

2017.06.23 조회수 : 470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예슬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세상에 온 날은 십여 년 전 4월 어느 봄 날이었다. 그 날은 조용한 토요일 이었고 예슬
엄마는 예약도 하지 않은 상태로 갑작스럽게 조산원을 방문하였다. 전화를 받고 기다리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의 모습은 산모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가벼운 몸과 표나지 않는 배를 박스형 원피스로 가리고 있
었다. 진통이 시작 된것은 그 날 새벽부터였고 집 근처 산부인과 병원에 갔으나 무언가 마땅치 않아서 인터넷을
찾아보고 우리 조산원을 찾아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어느 회사의 재무팀장이었고 경력 또한 상당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회사에서는 아무도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더구나 오늘 출산 때문에 결근을 했다는 사
실을 모른다고 하였다. 오늘 아기를 낳고 내일은 중요한 회의가 있기 때문에 내일 출근해야만 하는데 가능한지
물었다. 조산원에서는 남편과 함께 아이를 낳는다.
진통을 겪는 아내를 마사지해 주고 호흡을 리드하며 남편에게 의지해 품에 안긴 자세로 남편과 함께 아기를 낳
는다. 르봐이예 분만법이라고 하는데 르봐이예 박사가 주장한 가장 편안한 분만환경이 바로 우리의 옛날 가정분
만 환경과 비슷하다. 한국적인 것이 사실은 가장 세계적이며 가장 과학적인 것이다. 어둡고 소음이 없는 편안한
환경에서 남편의 마사지를 받으며 의학의 인위적인 개입없이 자연스럽게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호흡을 하고
회음부 절개 없이 태어난 아기를 조명으로 눈부시게 하지 않으며 엄마의 가슴위에서 젖을 물리고 탯줄은 맥동이
끝난 뒤에 자르며 아빠가 첫 목욕을 시키면서 출산이 부부의 성스런체험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이렇듯 보통 부부들은 아기가 세상에 오기를 평화롭게 기다리는데 남편은 커녕 친정에서도 자신의 임신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하였다. 꼼꼼히 진찰한 결과 산문은 절반 정도 열렸으며 그동안 뱃속에서 눈치 보며 잘자라
지 못한 한 작은아기가 세상에 나오기 위해 최소의 면적으로 골반을 통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은 아기는 안간힘으로 문을 다 열고는 천천히 세상 속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
지도 않고 낙태를 결정 짓지 않고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기다려준 어미가 고마워서일까? 회음부를 전혀 상하지
않고 출혈도 없이 조용하게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예슬이가 세상에 왔다. 엄마가 자신을 포기할까봐 숨죽이며
보낸 뱃속 열달 동안 어린 영혼이 받았을 상처에 가슴이 저린다. 세상에 나와서 예슬이가 처음으로 해본 일은 엄
마의 젖을 빨아 보는일이었지만 그것도 겨우 하룻밤.... 다음날 아침에 그녀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회사에 출근을
하였다. 아기 낳은 산모답지 않게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그나마 회음부 열상이 없어서 사무실의자에 앉기
불편함이 없다며 고마워 하였다.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다른 산모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예슬이를 조금 안고 있
다가 친정어머니가 그녀의 집에 와서 기다리고 있어서 그만 집에 가봐야만 한다고 하였다.
꿈자리가 뒤숭숭 하다며 친정어머니가 서울에 오신것 이다. 아무도 자신의 임신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에 출
산소식을 알릴수가 없었다. 세상 모두로부터 잉태와 탄생을 축하 받아 마땅한데 아무에게도 알릴수 없는 현실의
쓰라림... 처음 3일 동안 예슬이는 극심한 분리불안을 겪으며 품에서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든 품에서
내려놓기만 하면 아주 서럽게 울어댔다.

품에 안고 토닥토닥 두드려 주며 앞으로 고달픈 삶의 여정을 위로 해주기를 바라는 듯
하였다. 엄마가 잠시 안아보고 집에 가버리는 저녁 몇시간...그 며칠의 저녁시간이 예슬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까? 어느덧 회사일이 바쁘다며 조리원에 오지 않고 예슬이는
자신의 서글픈 처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고나 할까? 시끄럽게 굴다가는 신생아실에서 퇴출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여겼는지 살아남기 위해서 심하게 울지도 않고 누구든 눈만 마주치면 방긋거리며 웃는 아기
였다. 기저귀가 젖거나 배가 고프면 조금 낑낑 거리기만 할뿐 소리쳐 울지 않고 혼자 조용히 모빌을 바라보거나
옹알이를 하며 놀았다. 그것이 선생님들 모두를 더욱 가슴 짠~하게 만들어 볼을 부비며 귀여워해 주었다. 아기
키울 사람을 구하는대로 데려가겠다고 하더니 그렇게 달포가 흘러가 버리고 그동안 우리는 예슬이 키워줄 사람
을 구해서 보내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의견이 분분하였다. 아무도 예슬이를 보러오지 않았고 눈만 마주치면 웃는
예슬이를 착잡한 마음으로 모두들 바라 보았다.
아는 언니가 봐주기로 하였다면서 드디어 어느 토요일 오후 예슬이를 데려가겠다고 하였다. 친정집근처에 사
는 아는 언니라고 하였다. 직원들이 돈을 조금씩 모아 예쁜옷을 사 입히고 앞날을 축복해주며 엄마를 기다리는
데...동생으로부터 언니의 출산소식과 그 전모를 전해 들은 친정 어머니가 쓰러져서 조산원으로 예슬이 데리러
오던 차를 응급실로 돌린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어머니는 이미 전력이 있으셔서 이번에는 데미지가 클 거라며 울
먹인다. 엄마가 쓰러지고 혼수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나중에 의식은 돌아왔으나 마비가 오자 외삼촌들과 식구들
로부터 당한 냉대와 괄시로 다시 예슬이의 퇴원은 보류 되고 말았다.
예슬이의 재롱이 늘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자신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하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가족들과 친
척들이 합세하여 엄마를 코너로 몰고 있다는 것을 키울 것인가... 말 것인가…양갈래길에서 고민 하고 있다는것
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슬이는 예쁘게 커가고 있었다. 나는 단지 우유를 먹이고 사랑을 주었을 뿐인데...어떻게
저리도 고운 미소를 지을줄 알며 자그마한 볼에 통통 하게 살이 붙어가는 것인지... 신의 기적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천상의 언어로 한참을 떠들며 옹알이를 해댄다.
예슬이를 퇴근길에 집으로 몇 번 데려갔다. 뱃속에서부터 아기 키우기를 태교로 배운 우리 딸이 예슬이를 보내
지말고 우리가 키우면 안될까? 하고 안타까워한다. 예슬이는 하루하루 자라고 있는데 이렇게 사랑스러운 천사를
보러 오기는 커녕 잘자라고 있는지 전화조차 오지 않는다. 그녀의 고민이 어느정도 이해는 된다. 회사로 전화를
했다. 키울것인지 말것인지 어떤 쪽이든지 방향을 정해야 도와줄수 있는것 아니냐고 했다. 직장에 다니며 아비
없는 아기를 키운다는일이 우리 현실에서 얼마나 힘이 들며 자신의 인생에 족쇄가 될일 인지 새 남자를 만나 가
정을 이루는데 걸림돌이 될일인지 싱글맘을 이해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한국남자 가 과연 얼마나 되겠냐? 그러나
아이를 포기하고 살아간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비수가 꽂힌듯 가슴에 회한으로 남을것이다. 쪽박에 밥을 얻어 먹

더라도 함께 사는 것이 옳다고 이것이 모정이라고 다수가 말할 것이며 이 또한 한국인의 정서가 아니랴? 열달을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며 결국 출산을 선택하였듯이 또 다시 혼돈과 갈등에 휩싸여서 고민을 하고 생각
의 엑기스를 구해야만 한다. 인생은 항상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오늘 점심에 짜장을 먹
을 것인지 냉면을 먹을 것인지 선택해야 하고 영화를 볼 것인지 비디오를 볼 것인지.....그 남자와의 약속장소에
나갈 것인지 아니면 안 나갈 것 인지 결정해야 한다. 작은 행위에 큰 책임이 따르게 되는 생명에 대한 책임이야말
로 일생을 번민과 고뇌로 가슴을 치게 하는 선택이 아닌가? 많이 고민한 후 결정하라고 하였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가 울면서 대답하였다. 원장님께 죄송해서 진심을 말할수가 없었어요. 잘 키워줄 부
모를 찾아서 가는 것이 예슬이에게 나을 것 같아요. 어떻게 되겠지...하며 낳았는데... 혼자 키우며 살아갈수 있
으리라 생각했는데 식구들이 하도 난리를 치고 엄마가 쓰러지고 하니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 무서워 진다
고...그녀의 맘에는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였을뿐... 예슬이를 포기하고 있
었나 보다.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그녀가 아이를 포기하겠다고 한 뒤 나는 입양기관을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고아수출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
름도 이름이지만 그래도 예슬이가 우리 하늘아래 있어야 언젠가 생모를 만나볼 가능성이 높을 것 같고 한국에서
한국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 같고 예슬이 엄마도 국내입양을 원하므로 국내입양을 신속 정확하
게 처리한다는 시설에 연락을 취했다. 태어나고 12주동안 어찌나 정성을 들여 돌보며 사랑을 쏟았는지 예슬이
를 보내는 날 선생님들이 모두 울었다. 생모와 상담을 마친 날 출생증명서와 함께 예슬이를 보내는데 그날이 13
일의 금요일이었다. 돈을 조금씩 모아서 다시 예쁜옷을 사서 입힌 뒤 끌어안고 이별의 뽀뽀하고 사랑 받으면서
잘 자라라고 덕담을 해주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직원들.. 낳은정 보다 기른정이라고 했던가… 예슬이가 시설로 가
는날 자동차에 앉은 복지사에게 예슬이를 넘겨주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어디가는데? 할매는 왜 안가?’하는 눈빛이다. 우리 예슬이 잘가서 사랑 많이 받고 부디 잘 자라거라.....
서른명을 두분이 돌본다니 그 곳에서 우리 예슬이가 우유나 제대로 얻어먹을까 안쓰럽다. 배고파도 잘 울지 않고
똥 싸도 잘 안우는 예슬이가 그곳에서는 생존전략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엉덩이는 무사한지...다들 걱정이었다.
백일이 되기 며칠전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직 부모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하루만 데려와서 우리가 백일상을 차
려주면 어떨까 하고 이야기해 보았다. 다행히 이미 부모가 정해졌고 이달 29일이 백일인 줄 알기에 가서 백일잔
치를 할거라고 한다. 이미 한명 입양한 딸이 있는데 그 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 주려고 데려간다고 한다. 남의 자
식을 한명 키우는것 도 힘이 드는데... 좋은 부모를 만나서 가는 것 같아 잘되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멀고먼
별에서 지구별 인간의 세계에 왔지만 가장 믿고 의지할 엄마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느님은 너무 바빠서 엄마를
만들어 주었다는데 준비가 덜된 엄마가 사표를 내버리자 하느님은 가슴으로 품어 키워줄 엄마를 새로 만들어 보
내 주었다. 예슬아 버림받았다는 기억은 부디 지워 버리고 넘치는 사랑 받으며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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